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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부정공>처사휘원순묘지명(處士諱元淳墓誌銘)
處士諱元淳墓誌銘 東方自有墳墓以來子孫謹守其塋域連世繼葬使無憾於死生之道者乃先王之禮法遺風也夫何庚戌之秋我國淪於島夷述中行政事事不得自由而至于癸丑新定共同山限民族葬理之所使死者不得任歸于先壟之下嗚呼痛哉余亦不得巳於是年二月某日移奉府君體魄于大龜西麓先塋右谷配位孺人鄭氏幽宅乾坐之右同穴封之非敢曰吉利隨時痛變亦以爲永久無弊之計也府君諱元淳字善長季才府君諱之賓嫡曾孫也不幸無育而取家弟昌淳之長子仁根爲嗣以奉香火至于今絶府君生于 英宗乙卯卒于庚午二月二十六日配河東鄭氏奉直郞行吏曹佐郞贇孫女考曰基烈生卒爲 英陵辛亥二月十六日正宗壬戌正月六日云鍾悳遂撫前兆遷奉如禮愴然爲之銘曰龜山之下移卜宅幽孔坤同位陵福日休揭銘納壙於千萬秋 玄孫 鍾悳 謹識 처사휘원순묘지명(處士諱元淳墓誌銘) 우리 나라에 무덤이 있는 이래로부터 그 자손이 산소 자리를 정성을 다하여 지키고 장사 지내어 죽고 사는 도리에 유감없게 하는 것이 선왕의 예법이요, 유풍이다. 어찌하다 경술년 가을에 왜놈의 술책에 빠져 나라의 기반이 흔들이어 정치 일체를 자유롭게 못하더니 계축년에 이르러 새로 공동묘지를 만들어 백성의 매장할 장소를 한정하고 죽은 자로 하여금 선영 밑으로 가지 못하게 하니, 아 슬픈 일이다. 나 또한 할수 없어 이해 二월경에 부군의 체백(體魄)을 대구산(大龜山) 서쪽 기슭 동혈(同穴)에 옮겨 받들어 봉하였으니 감히 좋은 자리라 말할 수 없으나 때를 따라 변통하여 영구히 폐단이 없게 할 계획이었다. 부군의 휘는 원순이요, 자는 선장(善長)이며 수재 부군 휘 지빈(之賓)의 적증손인데 불행히 아들이 없어 아우 창순(昌淳)의 큰아들 인근(仁根)으로 후사를 삼아 제사를 받들어 지금까지 끊어지지 아니하였다. 부군의 영종(英宗) 을묘(一七三五)년에 출생하여 경오년 二월 二十六일에 별세하시었다. 배(配) 하동정씨(河東鄭氏)는 봉직랑 행이조좌랑(奉直郎行吏曹佐郎) 윤(贇)의 손녀요 기열(基烈)의 따님인데 영조 신해년(一七三一) 二월 十六일에 출생하여 정종 임술년(一八○二) 一월 六일 별세하였다. 종덕(鍾悳)이 마침내 옛일을 생각하여 예제에 따라 묘를 옮겨 받들고 슬픈 마음이 일어 다음과 같이 명(銘)한다. 구산 아래에 龜山之下 유택을 가려서 옮겨 移卜宅幽 배위를 통하고 자리를 같이하니 孔坤同位 내린복이 날로 아름답네. 陵福日休 새겨서 광중에 넣으니 揭銘納壙 천만년을 유지하리라 於千萬秋 현손(玄孫) 종덕(鍾悳) 삼가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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